2025학년도 대학생활 에세이
인터넷에서 유행하는 밈(meme)으로 에세이의 시작을 열어보려고 한다.
나는 이렇게 바꾸어 말해볼 수 있을 것 같다.
오늘 뭐 해?
동아리 연습하러 가
연습 끝나고는?
동아리 회의하러 가
... 내일은?
동아리 하계 워크숍......
그렇다. 지난 한 해 간 내 대학 생활의 전부는 동아리 활동이었다. 나는 지난 일 년 간 브레멘 음악대의 대장이었다. (우리 동아리는 회장을 대장이라고 칭하곤 한다. 동물의 세계에서는 그런 것이다.) 혹여나 브레멘 음악대가 어떤 동아리인지 알지 못하는 이들을 위해 한 문장으로 거칠게 설명하자면, 동물 잠옷 입고 악기 연주하는 동아리 정도가 될 수 있을 것이다.
지난 입학식 날이었다. 우리는 여느 때처럼 우리의 유니폼인 동물 잠옷을 입고 신입생들을 맞이했다, 캠퍼스 투어 때 우리의 시그니처 송인 브레멘 메들리를 연주하거나 전공별 레드 카펫 행진 때 신입생들을 향해 손을 흔들어 주는 식이었다. 당시 나는 동물인 상태이면서 스스로 동물이라는 사실을 인지하지 못하고 있던 그때 우리 앞에 놓인 레드 카펫이 늦봄 바람에 휘날렸다. 어느 선생님께서 우리 쪽으로 황급히 달려오시며 말씀하셨다. “동물들! 카펫 날아가지 않게 잘 밟고 있어줘!” 그 말을 들은 동물들은은 서로 눈이 마주쳤다. 잠시간 정적의 시간 끝에 반 걸음 정도 전진하여 선생님의 당부를 잘 수행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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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해 간 여러 무대들―동, 하계 워크숍, 입학식, 동아리 발대식, 외부 공연―에 올랐다. 그중 유난히 기억에 남는 하나를 고르자면 단연코 동아리 발대식일 것이다.
동아리 발대식 준비는 개강과 동시에 시작된다. 학과 생활도 병행해야 하는 우리는 수업이 끝난 강의실에 여전히 남아 연습을 했다. 많은 동아리들이 함께 서는 무대인만큼 각 동아리에게 주어지는 시간은 한정되어 있다. 단 8분. 그 시간 안에 무대를 소화해야 한다는 타임 어택 미션도 우리에게 더불어 주어졌다.
동아리 발대식은 가족과 친구 등 가까운 지인들을 대상으로 하는 동, 하계 워크숍과 달리 예대 학우들, 특히 막 입학해 어느 동아리에 들어갈지 고민하는 신입생들에게 우리 동아리를 보여줄 수 있는 절호의 기회이기도 하다. 특히 오케스트라 동아리인 우리에게는 발대식 무대가 가지는 의미가 컸다. 우리 동아리를 제대로 보여주자. 그런 비장한 마음으로, 매번 입던 동물 잠옷을 벗어던지고 당시 드레스코드였던 교복을 입고 무대에 올라섰다. (그리고 그날 우리는 여러 사람들로부터, 이를테면 교수님들과 학교에서 근무하시는 직원분들께도 이번에 동물 잠옷 왜 안 입었냐는 질문을 계속 받았다. 몇몇 신입 부원들은 사실 동물 잠옷 입고 싶었는데 못 입어 아쉬웠다는 반응도 더러 보였다.)
발대식 무대에서 어떤 곡을 연주할지 임원진 간 셋리스트도 꽤 오래 고민했는데, 우리는 애니메이션 메들리(꿈빛 파티시엘과 원피스)와 카트라이더 삽입곡인 대저택을 골랐다. 선정 요인으로는 대중성이 크게 작용하였고, 무엇보다 둘은 우리가 좋아하는 곡들이었다. 연주하는 우리가 좋아야 보는 사람들도 좋을 수 있을 테니까. 그 마음이 통했던 것인지, 꿈빛 파티시엘 무대 영상이 재생되고 첫 마디 연주가 시작되자 많은 학우들이 따라 불러주었다. 그 반응을 예상하지 못한 우리는 서로의 눈이 마주치자 웃었다. 원피스 주제곡인 ‘우리의 꿈’으로 전환되었을 때 흘러나오던 떼창은 아직도 잊을 수 없다. 살면서 이렇게 많은 사람들의 환호를 받을 일이 또 있을까 싶어 무대 위에서 자꾸만 올라가는 입꼬리를 막을 수 없었다. 무사히 공연을 마친 발대식 무대 다음날, 공연 잘 보았다며 동아리 부스에 방문해 입부 신청서를 작성하는 신입생들을 볼 때는 지난날 환호 받을 때보다 더 좋았다. 정말 우리의 꿈이 이루어진 것만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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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원진 졸업을 앞두며, 7기 임원 친구들과 악보집을 만들고 있다. 일 년간 우리가 함께 연주했던 곡들의 총보를 모았고, 각 곡에 담긴 에피소드를 짧은 코멘트의 형식으로 남겼다. 그 작업을 하는 동안 지난 셋리스트를 자주 들었고, 그러면서 알아차린 게 있다. 음악에는 지금의 나를 단번에 그 시절과 그 공간으로 데려다주는 힘이 있다는걸.
반짝이는 슬레이벨 소리는 연습 끝나고 친구들과 향했던 마포 설렁탕집(국밥은 추위에 웅크려 있던 우리를 금방 녹일 정도로 따뜻하고 든든했다)으로, 호기로운 기세의 호루라기 소리는 아이스크림을 두 개씩 사들고 갔던 여름의 광덕공원으로 금세 나를 데려갔다. 그런 기억을 다시금 떠올리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즐거운데, 친구들이 남긴 코멘트를 읽는 건 더 즐거운 일이었다. 우리가 가지고 있던 각자의 기억 조각을 모아서 완성할 수 있었던 한 권의 악보집이었다. 그 기억에 기대어 이 에세이를 썼다. 그리고 이 글 또한 다시 기억의 조각이 되겠지.
이번 하계 공연의 마지막 곡은 재쓰비의 ‘너와의 모든 지금’이었다. 이 곡의 가사를 일부 인용하며 에세이를 갈무리하려 한다. “내게 언제의 나를 사랑하냐고 묻는다면” 나는 망설임 없이 대답할 것이다. 우리의 모든 지금이라고.
25.8.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