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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지 않는 당신을 기다리지만 결국 올 걸 알아

  [2025-1] 융합전시 <언젠가 신호는 초록이 된다> 수필

 

  오지 않는 당신을 기다리며. 줄여서 오당기는 코미디언이자 배우 문상훈의 유튜브 콘텐츠 제목이다. 호스트 문상훈과 게스트는 배달음식을 주문하고 그것이 도착하기까지 두런두런 이야기를 나눈다. 그리 넓지 않은 방 그리 높지 않은 조명의 조도 아래 그리 크지 않은 목소리로 이어가는 잔잔한 대화에 푹 빠진 그들은 어느새 잊는다. 지금 기다리는 중이라는 것을. 기다림에는 그런 속성이 있는 것 같다. 기다림을 잊게 하는 무언가가. 어쩌면 기다리고 있다는 사실을 잊어야 기다림을 지속할 수 있는지도 모른다.

 

  둘 이상이 모이면 관계는 필연적으로 다음과 같은 양상을 띈다. 기다리게 하는 사람()과 그 사람()을 기다리는 사람(). 누군가 나를 기다리는 모습을 상상하면 좋으면서도 한편으로는 발을 동동 구를 정도로 마음이 불편해지기도 해서 후자가 되기를 자처한다. 약속 시간보다 여유롭게 약속 장소에 도착해 앉아 있고는 한다. 예정된 시간에서 벌어진 약간의 틈, 어쩌면 존재하지 않았을 시간이 여분으로 주어지고, 보너스 시간을 선물받은 기분이 든다. 기다림은 또 언제나 예상 도착시간과 다르게 도착하는 경기도 버스처럼 갑작스럽게 찾아오기에, 기다림이 언제 발생할지 예측하기는 어렵다. 최근 보건증을 수령하기 위해 보건소에 방문했다. 아무도 없었다. 시계를 보니 열두 시였고, 점심시간이 막 시작되었음을 알아차렸다. 직원분들이 돌아오기까지 앞으로 한 시간. 기다리기로 했다. 기다릴 수 있었다. 어깨 건강을 염려하며 무거운 짐 보따리를 짊어지고 다닌 보람이 있었기에··· 몇 권의 책과, 노트와 펜. 그것이 있는 한 기다릴 수 있다. 얼마든.

 

  주로 나를 기다리게 하는 사람들은 나의 친구들이다. 나의 친구들은 대체로 사랑스럽고 종종 지각을 한다. 사랑스러운 지각쟁이에게서 메시지가 도착한다. 까무룩 잠에 들어 이제야 눈을 떴어. 눈물 흘리는 이모티콘과 함께 얼른 달려가겠다는 메시지도 곧이어 도착한다. 이 모든 일이 있었음에도 여전히 우리의 우정은 지속된다. 나는 기다림에 적합한 인간이고, 나는 나의 사랑스러운 지각쟁이들을 사랑하기 때문이다. 기다리는 건 즐겁고, 사랑하는 애들을 기다리는 건 더더욱 그렇다. 기꺼이 기다릴 수 있다. 그러다 가끔 상상한다. 사랑스러운 지각쟁이가 끝내 오지 않는 미래를. 그러다 혼자 남겨지는 장면을. 그건 조금 외로울지도 모르지. 그때 문득 알아차렸다. 그동안의 기다림이 기꺼울 수 있던 건, 그 기다림의 기저에 단단한 믿음이 깔려 있었기 때문이라는 것을. 아직 오지 않은 너를 기다릴 수 있는 건 네가 결국 올 걸 알기 때문이야. 그 믿음이 배반했을 때에도 여전히 나는 기다릴 수 있을까. 기다림 자체를 기다릴 수 있을까. 비가 그친 거리에서 우산의 물기를 털어내며 생각했다. 빗물에 젖지 않은 계단에 가방을 내려두고, 조심스레 앉았다. 그때 친구로부터 메시지가 도착했다. 나 횡단보도 앞이야. 그곳은 사거리였고, 네 개의 횡단보도. 그 앞에 서 있는 무수한 사람들 속에서 단번에 친구를 찾아냈다. 나의 시선과 친구의 시선이 겹쳤을 때, 친구는 웃었다. 친구가 웃어서, 나도 웃었다. 신호가 초록이 되었고, 나의 기다림은 종료되었다. 그 사실에 크게 안도하며 친구를 향해 손을 흔들었다.

 

  25.6.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