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2] 서울예대 문장론 (B)
살면서 스스로 어른이 되었다고 느끼는 순간 있을 것이다. 어릴 적 드라마에서 본 장면이 떠오른다. 취업 후 탄 첫 월급으로 부모님께 빨간 내복 사드리는 자식. 티브이 속 눈물 훔치는 얼굴 보며 아무래도 빨간 내복 받고 울지 않긴 어렵지…. 고개를 주억댔다.
나는 월 8회에 13만 원 하는 요가원 등록비를 내돈내산하며 스스로 어른 되어가고 있음을 느꼈다. 누군가에겐 13만 원은 큰돈 아닐 수도 있겠지만, 주말 아침 소중한 늦잠 반납하고 빵과 커피 팔며 귀여운 월급 받는 내겐 분명 적은 돈 아니었다. 체크 카드 쥔 손이 떨렸다. 이 돈이라면 먹을 수 있는 치킨이 몇 마리인가. 머릿속에서 계산기 두드리면서도 더는 운동을 미룰 수 없다는 생각도 동시에 들었다.
여름휴가 날이었다. 우리 가족은 아침부터 관광지와 맛집 대신 병원을 돌았다. 본가 들를 때마다 부모님께 건강검진받아야 한다고 당부했던 터였다. 엄마와 아빠는 연세에 비해 건강하셨다. 다행이었다. 문제는 나였다. 자취한다고 밥을 제대로 챙겨 먹지 않은 탓이었다. 치킨 한 마리 시켜 몇 끼 때우는 식습관 가졌으니 건강에 문제없는 게 더 문제일 것이었다. 검진표에 몸무게 쓰이자 등 뒤로 날아오는 엄마의 따스한 손길. 원래 이 정도는 아닌데 전날 금식한 영향이 큰 것 같아. 되지도 않는 변명에 의사 선생님은 말없이 고개 저으셨고, 결국 엄마한테 등짝 한 대 더 맞았다. 그 손길 너무 아파 정신이 번쩍 든 걸까. 그렇게 요가원으로 곧장 향해 13만 원 긁게 된 것이었다. 돌아오는 길에는 요가복 쇼핑했다. 요가복이 내복과 꽤 닮아 있는 것 같다고 생각했다. 그렇다면 빨간 요가복은 절대 사지 말아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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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가원 간 첫날에 대해서라면 할 말이 많다. 일정상의 이유로 파워 빈야사 수업 들으러 온 내게 선생님께서 물으셨다. 괜찮으시겠어요? 시작한 지 오 분도 채 안 되어 외치고 싶었다. 괜찮지 않다고. 그 수업이 요가를 업으로 삼는 분들도 힘겨워하는 고강도 수업이란 걸 뒤늦게야 알았다. 온몸에서 땀이 폭포처럼 흘렀다. 땀이 잘 나지 않는 체질이라 믿어왔는데 그동안 땀을 흘릴 만큼 고강도 운동을 해오지 않았을 뿐이라는 걸 깨달았다. 별이 보인다는 말도 비유가 아니라는 걸 알게 되었다. 미세먼지로 보이지 않던 밤하늘의 별들이 내 눈앞에서 반짝거리고 있었다. 다행히 문 가까이 자리 잡고 있던 터라 여차하면 도망갈 마음먹었다. 일단 살고 봐야지. 선생님께서 다른 분들 자세 잡아주는 적당한 타이밍에 맞춰 몸을 일으키려는데 도저히 일어날 수 없었다. 내겐 도망갈 힘조차 남아 있지 않았다.
(도망가지 못한) 나를 둘러싼 모든 사람들이 매트 위 발 딛고 서더니 물구나무서기 시작했다. 머리 서기 동작이었다. 요가 하지 않는 이라도 한 번쯤 봐왔을 그 동작. 그들의 다리는 자동문처럼 천장을 향해 곧게 올라가더니 이내 완벽한 일직선을 이루었다. 거꾸로 존재하는 게 자연스러운 일이라는 듯 평온한 얼굴이었다. 저 상태로 잠도 자고, 밥도 먹을 수 있을 것 같았다. 여기서 정자세로 존재하는 건 나뿐이어서 나만 다른 공간에 있는 듯한 은근한 소외감 들었다. 뭐지? 왜 다들 되는 거지? 사실 이거 다 되는 건가? 싶은 마음에 매트 위 머리 가져다 댔다. 어디 계셨는지 보이지 않던 선생님께서 달려오시는 모습 이거꾸로 보였다. 나는 다시 정자세로 돌아왔다. 선생님은 내 속마음이 들리기라도 한 것처럼 말씀하셨다. 저분들은 몇 년씩 해온 시간 차곡차곡 쌓여 가능한 거라고. 다 저마다의 속도가 있다는 말에 오히려 마음이 더 조급해졌다. 얼른 능숙해지고 싶었다. 거꾸로 서 있는 사람들처럼. 익숙해지고 싶었다. 섣부른 마음이라는 걸 알면서도. 요가를 시작하고 나서 힘든 건 몸보다도 못하는 상태의 나를 견디는 일이었다. 못하는 모습이 못나게 느껴져서. 잘해야 계속할 수 있다고 믿는 사람처럼 좋아하는 일과 잘하고 싶은 일 앞에서는 유난히 참을성이 사라지는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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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가원 나온 지 이 주 정도 된 날이었다. 한 도반 님께서 말을 걸어왔다. 처음 보는 얼굴인데. 여기 다닌 지 얼마 안 되었죠?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탈의실 오가는 여러 사람들과 살갑게 인사 나누는 그의 모습에서 요가원을 꿰뚫고 있는 듯한 포스가 느껴졌다. 그는 내게 힘들지 않냐고 물었다. 파워 없이 파워 빈야사 수업 들은 게 떠오른 나는 고개를 연신 끄덕였다. 그러면 왜 계속 나와요? 머릿속에 바로 떠오른 숫자. 130,000.
“돈 냈으니까요….”
농담인 줄 알았는지 웃은 그는 요가원 다닌 지 사 년이 훌쩍 넘었다고 했다. 사 년 차 그와 사 일 차 나. 마주 보고 앉은 우리 사이 어떤 세월감 느껴져 아득해졌다.
“오래 하셨으면 잘하시겠어요.”
“잘은 못해요. 근데 저녁 먹고 수련 오는 게 이젠 습관이 되어버렸어. 그냥 하는 거예요. 밥 먹듯이. 우리 밥도 그냥 먹는 거잖아. 먹어야 하니까. 안 먹을 수 없으니까. 요가도 그런 거예요. 그냥, 계속 하는 거야.”
돌아오는 길 조해주 시인의 시를 꺼내 읽었다.
소설은 언제까지 쓸 거니? 누군가가 묻는다.
못 쓰지만 계속 쓸 거야
못생겼지만 사는 것처럼, 나는 대답한다.
나는 다르게 말해보았다.
요가는 언제까지 할 거니? 누군가가 묻는다.
못 하지만 계속할 거야.
못생겼지만 사는 것처럼, 나는 대답한다.
그리고 한 문장 더 덧붙였다. 못 해도 계속할 수 있어.
요가원 다니며 엄마가 기뻐할 만한 변화도 생겼다. 밥을 잘 챙겨 먹게 된 것이었다. 가기 전에는 힘내기 위해 먹고 돌아오면 힘썼으니 먹었다. 싹싹 비운 밥그릇과 반찬통 사진 찍어 가족 톡방에 전송한 후 일찍 누웠다. 내일 아침에도 수련 가야 하니까. 다짐 없이 습관으로 자리 잡혀가는 일들이 내게도 생겨난다. 그냥 하는 마음이 뭔지 이제 조금은 알 것 같다. 오늘 하루와 이 에세이를 요가 인사로 마무리하려 한다. 나마스떼.
24.9.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