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세탁기 문을 연다
(이 과정에 대해서는 더 설명할 것이 없다. 설명이 필요 없는 일에 대해서는 더는 설명하지 않겠다고 어느 일기를 적으며 다짐했다.)
2. 토끼를 세탁기에 넣는다
나는 세탁기에 토끼를 넣을 때 울지 않는 사람을 이해할 수 없었지만 새 토끼를 입기 위해 지난 토끼를 정리해야 한다는 사실은 이해하였으므로 지갑에서 세탁방 멤버십 카드를 꺼냈다. 바구니에 담아온 하얀 토끼들을 조심스레 바닥에 내려두었다. 깨금발을 한 채 몇 마리인지 세어보다 잘못 달려온 검은 토끼 한 마리를 발견했다. 그걸 덥석 집어 들었다. 안돼. 너는 슬플 때 검은 눈물을 흘리잖아. 하얀 토끼가 더 하얘지는 걸 방해해서는 안 돼.
3. 세탁기 문을 닫는다
의자에 앉아 검은 토끼의 거슬거슬한 털을 쓰다듬으며 문을 열었을 때 벌어질 수 있는 일에 대해 상상했다. 토끼가 사라진다. 토끼는 원래 토끼는 존재이므로 설령 사라진다고 하더라도 놀랄 일은 아니다, 슬픈 일이 될 수는 있어도.
슬픔에는 얼마간 익숙한 면이 있다.
슬플때는 수학을 하면 도움이 된다.
세탁방 자판기에 종이가 들어있는 건 그 때문이다. 유난히 새하얀 종이 한 장을 뽑아 토끼가 여전히 토끼일 확률과 토끼가 토끼 아닌 존재가 될 확률을 계산했다. 아무리 계산해도 발생 가능한 모든 사건의 합이 1이 되지 못해 무엇을 놓쳤는지 곰곰 생각했다. 종이를 더 뽑기 위해 자리에서 일어났다. 동전을 넣고 나서야 알아차렸다. 그건 토끼가 토끼이면서 동시에 토끼가 아닐 확률이었다. 토끼는 그럴 수 있는 존재였다. 가끔 익숙한 사실을 새하얗게 잊어버리곤 한다.
토끼를 세탁기에 넣는 방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