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누리 - 주정
지금부터 내 비밀 하나 고백하려구
나의 영생에 관해 말해주려구
길 걸을 때면 눈이 부셔 나는 늘 바닥을 보고 걷는단다 가끔 골목은 나 대신 몸을 일으키고 그러면 나는 거기에 바짝 붙어 엎드려. 무지개 같은 걸 보면 그날은 운세가 좋을지도 모르지.
어쨌든 죽지 않을 거지만,
그 길가 높은 턱에서 뛰어내릴 때
아래로 발 디딜 때
망설임은 십오 센티미터보다 길게 늘어나네 그건 내가 만질 수 없는 벌레처럼 이리저리 내 앞을 돌아다니고 나는 그 땅을 밟을 수 없어. 아니
잠들고선 한참 뒤에야 깨어나도 걱정하지 마 꿈에서야 비로소 죽을 수 있게 되는 나를. 가끔 나 꿈속 그 명부에서 내 이름 지워버린 인간 알게 되기도 해
너 내가 평생 살면 좋겠다고 생각했구나
우리가 함께 걸은 길거리의 희고 푸른 풍경이 천천히 재빠르게 바뀌어가는 걸 긴 시간 지켜볼 때 느껴지는 건 행복과는 멀리에 있는
그런 마음
내가 아는 비밀 다시 고백하려구
하지만
아는 걸 모두 말하는 사람이 되고 싶지는 않아 저기서 날아오는 저 공 피하지 못하고 맞아버리겠지만 이마에 난 혹을 만져도 나는 평생 죽을 수 없는 사람
너의 어디쯤을 생각해 너의 테두리 너의 형태 우리의 초록빛 비 내리는 한낮의 길
그 풍경을 영영 잊고 싶지는 않더라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