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나는 계란후라이가 싫다. 나나는 정의한다. 계란후라이는 두 색 고양이라고. 계란후라이는 꼭짓점이 두 개인 삼각형이라고. 계란후라이는 탑이 없는 정글짐이라고. 계란후라이는 꼭, 완벽하지가 않다고. 나나는 정의한다. 계란후라이는 독립적인 메뉴가 아니다.
오늘은 방과후 수업에서 건담을 조립하는 날이고 나나는 건담을 조립하는 것은 싫지 않지만 건담을 조립하는 반에 남자애들이 많은 것은 싫다. 그러나 하하와 마마는 늘 부재중이므로 나나는 집에서 간식을 먹고 방과후 수업에 간다. 나나는 한입 남은 계란 흰자에 소스를 잔뜩 묻혀 오물오물 먹는다. 먹는 내내 나나는 인상을 쓰고 있고 흐린 날씨를 보며 나나는 우산을 챙겨야겠다 생각하지만 나나가 문을 열고 나갈 때 우산 같은 건 이미 잊혀진 뒤다.
나나는 물을 몰고 다닌다.
나나가 학교에 가는 동안 나나의 여린 이마 위로 굵은 빗방울이 떨어진다. 나나는 두 손으로 차양을 만들어보지만 차양은 금세 허물어지네. 나나는 모르는 빌라 처마 밑에 들어간다. 딸기 문양이 그려진 양말에 흙탕물이 튀는 것을 나나가 본다. 나나는 아끼는 양말 위에 씨처럼 뿌려진 흙 자국을 매만지며, 늘 이렇다고 생각한다. 늘 이렇지, 그럼 그렇지. 이것은 나나의 말버릇이고 나나는 몇 살이게. 맞혀봐. 그러나 중요한 것은 나나의 나이가 아니다. 중요한 것은 나나에게 마음이 있다는 사실, 그리고 나나가 지금 슬프다는 사실이다. 적어도 나나에게는.
비는 그칠 기미가 없어 보이고 나나는 가만히 비가 내리는 것을 본다. 지금 나나에게 가능한 것이 가만히 비를 보는 것뿐이기에. 나나는 방과후 교실에 가 남자애들이 떠드는 소리를 듣는 것과 낯선 처마 밑에서 떨어지는 비를 맞는 것 중 어느 것이 더 싫은지 고민한다. 그러나 둘 다 싫은 것은 아니라고 나나는 생각한다. 싫지는 않지만 괴로운 일이야. 하하와 마마와 함께 먹어야 하는 저녁이 그렇듯이. 마마는 늘 나나가 간단히 먹을 수 있는 과자를 사다 준다. 나나는 늘 하하와 마마가 오기 전에 과자를 다 먹기 위해 입을 크게 벌리고 그러나 하하와 마마는 나나가 과자를 다 먹고도 한참 뒤에야 온다. 주말에 나나는 하하 마마와 저녁을 먹고 그때 집은 고요하다. 나나의 몸에는 그 시간들이 있다. 나나는 시간과 함께 자라고 있다.
가끔 나나는 자신이 없는 집을 상상한다. 여전히 비는 예고 없이 내릴 것이고 하하와 마마의 시간은 고요하게 흐를 것이다. 나나가 스스로 없어지는 상상을 할 때마다 자라고 있다는 사실을 하하와 마마는 알까. 어떤 아이는 조용히 자라서 아무도 어른이 된 아이를 알아보지 못해. 나나는 빌라 차양 바깥으로 손을 뻗어 비가 닿게 한다. 차가운 물방울이 손을 타고 흐르는 것. 이것은 싫지도 괴롭지도 않다. 빗속에서 아이들이 흐려지는 동안
나나는 손이 깨끗해지고 있다고 믿는다.
<계간 문학동네 2025년 여름호 통권 123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