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해주 - 눈 깜빡할 사이에
어제까지 안 보이던 얼굴이 오늘은 선명하게 보인다
거울 앞에서 청바지 지퍼를 반쯤 올리다 멈춘다
나는 다양한 크기의 청바지를 가지고 있다
오늘은 어제와 다른 것을 골라야 할 것 같고
입김을 분다 생각보다 천천히 사라진다
소설에 나오는 이야기와는 다르게
매일 아침 식은 식빵을 천천히 찢는다
식빵은 나누어질 뿐 사라지지 않는다
개가 개구멍에 걸리는 순간처럼
타인은 더 이상 내가 한 농담으로 웃지 않는다
집에 돌아가면 문 비밀번호가 바뀌어 있다
이름을 부르는 것만으로는 열리지 않는다
길에 대해서 알지도 못하면서
길을 사랑할 수 있을까
소설은 언제까지 쓸 거니? 누군가가 묻는다
못 쓰지만 계속 쓸 거야
못생겼지만 사는 것처럼, 나는 대답한다
덤불이 되도록 꼬이고 이해할 수 없는
길을 품 안 가득 안고
누군가 나를 잠가주었으면 좋겠는데,
찢어진 페이지가 다시 아물듯이
오래된 테이프가 거꾸로 돌아가고
코트 입은 타인과 다시 달라붙듯이